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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이야기 ⑧

기사입력 2009-05-21 10: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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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7대 왕(1417∼1468, 재위 1455년∼1468년)). 휘 유, 자는 수지, 시호는 세조. 1417년 당시 충녕대군이던 세종과 소헌왕후의 차남이자 네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진평대군 후에 함평대군, 진양대군으로 개봉되었다가 1428년(세종10년) 다시 수양대군으로 개봉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학문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병약했던 형 문종과 달리 무예 실력도 출중했다.

1450년 부왕 세종이 승하하고 그 뒤를 이은 문종 이향은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2년 3개월만에 승하하고, 12살의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였다.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홍달손, 양정 등 30여인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고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1453년에 계유정란을 일으켜 단종의 보호책임을 맡은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아우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키고 스스로 영의정이 되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1455년 단종을 강제적으로 상왕으로 올려 왕위에서 밀어냄으로써 조선의 새로운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14년간 왕위에 있었다.

세조가 즉위한 이듬해(1456년)에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 등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 출신 관료들과 무신들은 세조 부자를 제거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발각돼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한 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내고, 집현전을 폐지하였다.

그 후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 등이 또다시 단종 복위 사건을 일으키자 금성대군을 죽이고 단종도 같이 죽였다.

이후 세조의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야인으로 일생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 단종복위 사건으로 처형된 사육신에 대비하여 생육신이라 한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세조는 왕권강화를 위하여 여러 가지 제도의 변화를 꾀하였다.
 
먼저 의정부사서제를 폐지하고 강력한 왕권을 위한 육조직계제를 다시 도입했다.
 
또한 단종 복위운동 사건 직후 집현전을 해체하고 대신 왕의 출납기관인 승정원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이후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유향소를 폐지하고 토호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또한 세조는 국방력 신장에도 힘을 썼다.

호적, 호패제를 강화하고 진간체제를 실시하여 전국을 방위체제로 편성하였으며 중앙군을 5위제도로 개편하여 야인을 소탕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전을 위하여 서북면 개척, 하삼도(평안,강원,황해도) 백성을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단행하고 각도에 둔전제를 실시하였다.


경제정책에서는 과전법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과전을 폐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여 국가수입을 늘렸다.


말년에는 왕위의 찬탈로 인한 인간적 고뇌에 싸여 불교에 많이 의지했다.

1468년 세조는 자신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한명회 및 신숙주, 구치관 등을 불러 글들에게 왕세자 해양대군을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했다.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가 다음호에 배울 조선의8대왕인 예종이다). 다음 날, 52살의 나이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수많은 목숨을 빼앗고 왕좌에 올라 세상을 호령했던 왕의 시대는 이렇게 끝이 났다. 능은 경기도 양주의 광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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